도움받던 이가 다른 이웃 손잡아…
기업-교회 ‘선한 콜라보’ 감동

이랜드복지재단 SOS위고봉사단원 설은아씨가 지난달 서울의 한 골목에서
어르신들을 도와 폐지를 줍고 있다. / 이랜드복지재단 제공
“도움받던 이가 다른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돌봄이 어떻게 서로를 물들이는지 실감했죠.”
정부의 지원이 닿지 않는 복지 사각지대의 위기가정을 돕는
이랜드복지재단 SOS위고봉사단 단원 설은아(33)씨의 말이다.
서울 화평교회 평신도 사역자이기도 한 설씨는
올해로 7년째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설씨는 2년 전부터 서울에 사는 70대 어르신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처음엔 ‘교회에서 왔다’는 말에 거리를 두던 노인은
지난해부터 설씨가 함께 폐지를 줍는 것을 허락했다.
설씨의 말이다.
“김칫국물이 묻은 깡통을 처음 줍던 날엔
솔직히 지저분하다고 느꼈어요.
할아버지도 폐지 줍는 모습을 안 보여주고 싶어하셨죠.
하지만 할아버지가 신앙을 받아들인 후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우시는 걸 보며 오히려 제가 부끄러웠어요.”
최근에는 이 어르신이 동네에서 성격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홀로 사는 80대 노인을 돕기 시작했다.
자신의 수입원인 ‘구역’을 나눠주며
폐지 줍는 요령을 알려주는 모습은
설씨에게도 적지 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도 하루 5000~7000원 벌기 쉽지 않거든요.
자기 구역을 나눠준다는 건 밥그릇을 내주는 것과 같아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서로 돌보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대담하는 유제중 화평교회 목사와 설씨, 김혜연 이랜드복지재단 팀장(왼쪽부터).
신석현 포토그래퍼
설씨와 유제중 목사, 위고 실무를 맡은
김혜연 이랜드복지재단 팀장을
지난 27일 서울 광진구 화평교회 예배당에서 만났다.
세 사람은 도움을 받던 이가 다시 누군가를 돕는
‘서로 돌봄’의 증인들이다.
이들은 교회 공동체와 전문 기관이 함께 만들어가는
돌봄의 선순환 구조를 이야기했다.
주택가 지하 99.1㎡(30평) 남짓 공간.
화평교회 예배당에는 자립준비 청년, 노숙인, 다문화 가정 아동,
난민,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장년 등 다양한 이들이 드나든다.
예배 후에는 모여 앉아 식사를 함께한다.
화평교회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소속으로
유 목사가 2020년 개척했다.
지금까지 14개 교회를 분립 개척했으며
각 교회는 난민, 노숙인, 위기 청소년 등 다양한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4명의 무급 전임 사역자들은
배달,청소 등의 별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그 수입으로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화평교회는 특히 자립준비 청년 10여명,
복지 사각지대에서 성장한 청년 20여명과 관계를 맺고 있다.
설씨 자신도 유 목사의 지원을 받던 청년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 알코올에 의존하던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자랐고
대학 진학 후 상경해서는 거처가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허리를 다쳐 위고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현재는 위고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현장을 누비고 있다.
사각지대에 닿는 빵과 복음

SOS위고봉사단원 강희숙씨가 난민 가정을 방문한 모습. 이랜드복지재단 제공
“예전엔 병원비가 없어서 119에 무연고자 신고를 하고
멀리서 지켜본 적도 있어요.”
개척 초기부터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힘썼지만
돌아보면 눈물 나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고 유 목사는 회상했다.
위고와 만난 뒤부터는 서러움을 겪을 일이 대폭 줄었다.
병원비,주거비,생활비 등이 3일 내 긴급 지원되면서
교회는 어려운 이들을 발굴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SOS 위고는 이랜드복지재단이
2013년 ‘선한 사마리아인’을 지향하며 시작한 사역이다.
2022년 전국 단위 조직으로 확대되며
현재는 96명의 봉사대원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목회자, 사회복지 전문가로 구성된 무급 자원봉사자다.
봉사단원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을 발굴해
이랜드복지재단과 연계한다.
개인 파산, 주 소득자 사망, 은둔형 외톨이 등 긴급 위기 상황을
선별해 ‘골든타임’ 3일 이내에 병원비,주거비,생활비 등을 지원한다.
이후에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공동체 안으로 연결한다.
재단에 따르면 2013년부터 24만6000여 가구를 지원했고
이 중 92%가 일상 회복을 경험했다.
현재까지 2000여개 기관과 교회가 위고와 협력 중이다.
위고봉사단원 96명 중 17명이 화평교회 소속이다.
김 팀장은 “화평교회는 발굴에 그치지 않고
복음 전파와 공동체 연결까지 실천하는 교회”라며
“17명 중에는 섬김을 받던 이가 다시 섬기는 이로 세워지는
선순환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랜드그룹은 ‘돕는 자를 돕는’ 구조를 지향한다.
‘돕돕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효과적으로 돕는 단체를 찾아
지원하는 협력 사업에 힘을 쏟는다.
유 목사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은 복음만으로는 어렵다.
빵과 함께 가야 한다”고 전했다.
그가 말하는 ‘빵’은 위고의 긴급 지원과
사역자들의 일상적 돌봄을 뜻한다.
‘복음’은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와 소속감을 의미한다.
유 목사는 이어 “화평교회는 이랜드복지재단과 동행하며
오늘도 누군가의 ‘회복 시작점’이 되기 위한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며 “돌봄은 오늘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돼
이웃의 손을 거쳐 또 다른 이에게로 흘러간다.
돌봄은 퍼질수록 강해진다”고 덧붙였다.